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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창고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눅 18:35~43)


여리고는 갈릴리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성읍이었습니다.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맹인의 입장에서는 구걸하기에 딱 좋은 길목이었습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이 맹인은 길가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날도 많은 무리가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맹인은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궁금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하면서, 그것이 걸림이 되어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못했습니다. 메시아가 나사렛처럼 가난한 시골 촌구석에서 나올 리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 예수님 당시에 일반적으로 '나사렛'이라고 하면 멸시 받는 땅으로 인식되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선민의식을 가졌던 예루살렘과 유대 지경의 유대인들과 달리 이방인들에 둘러 쌓여 있던 갈릴리 지방에서도 매우 작은 초라한 마을이었기 때문입니다. (사 9:1,2). 그래서 나다나엘까지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반문했던 것입니다. (요 1:46,47).

그러나 여리고 맹인에게는 예수님의 출신이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꾸짖음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나사렛 예수'를 '다윗의 자손 예수'로 고백하며 부릅니다. 이 맹인에게는 예수님이 만물을 치유하고 회복시킬 능력의 메시아란 확신과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치자 앞서 가는 자들이 맹인을 꾸짖습니다. 잠잠해라, 조용해라, 소란 피우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인은 더욱 크게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습니다. 여기서 주님이시면 나를 치유하실 수 있다는 간절한 맹인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더욱 크게 소리를 질러 예수님을 찾은 것입니다.

“더욱 크게 소리 지르다”는 것은 원어로 보면 알아들을 수 없는 짐승의 소리처럼 악을 쓰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 만큼 맹인의 간절함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간절함은 메시야 되시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주변의 방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놓칠 수 없는, 다시는 없을 기회라고 여겼기에 가능했습니다. 맹인은 처절하게 부르짖어 주님을 만납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간절한 믿음이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지금 혹시 고난의 자리에 계십니까. 고난 받는 자리에서도 권능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더 겸손하게 하고 끈질기게 인내하며 기도하는 자리로 이끌어 가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절실함을 가지고 주님을 매 순간 만나야 합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를 준비하듯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 때에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만나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리고의 맹인이 가졌던 믿음이 우리 의 믿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때 주 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의 삶을 통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찬양 하게될줄믿습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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