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랬다. "선교는 예배가 없는 곳에 예배가 있게하는 것" 이라고.
요한복음 4장에서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은 뜨거운 오후에 물을 기르기 위해 우물가에 왔고
그 곳에서 예수님을 만난다.
그 여인은 물을 달라고 하시는 주님과 몇 번의 언쟁이 오고간 끝에 주님의 한 물음에 무너지고 만다.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요한복음 4:16-19
이 여인의 깊은 상처는 흔히 다섯번의 이혼이라고 하지만 또다른 해석은 그 시대에 여자가 이혼을 다섯번 했다면 오히려 돌에 맞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면, 아이를 낳지 못해(불임) 다섯번이나 쫒겨났을 것이란 해석이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버림 받은 여인의 상처는 너무나 깊기만 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인의 아픔을 꾀뚫어 보시니 선지자라고 알아보고는
주님께 질문을 한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한복음 4:20
이 여인은 놀랍게도 선지자 앞에서 자기의 미래에 대해 묻지 않는다. 나의 형편이 언제 나아지겠는지,
내가 무엇을 먹고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할지, 내가 언제 결혼을 할지 물어보지 않는다.
예배에 대해 물어본다.
그리고 물동이를 버리고 마을로 돌아가 메시야를 전했다.
이 여인의 갈망은 예배였다.
예배는 우리의 형편과 상황을 뛰어넘어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의 목적이다.
그렇다. 선교는 이 예배가 없는 곳에 예배가 있게 하기 위함이다.
신랑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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