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에서의 삶_아바드와 샤마르
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가장 처음으로 명령하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경작하고"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이 일들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덴에서의 삶이었습니다.
에하드가 있었던 에덴에서의 삶은 두 가지의 삶이었습니다.
죄가 에덴에 들어옴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분리되기 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었습니다.
첫 번째, 경작하는 일입니다. 히브리어로 ‘아바드’라고 합니다. 일하다, 예배하다, 봉사하다, 섬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아바드’는 제사장이 성전에서 섬기는 일, 봉사, 예배하는 행위를 나타냅니다.
아바드의 삶이란 아버지의 집에 거하며 아버지의 집을 다스리고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이 하나님의 성전이었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였습니다. 아버지의 집이 었습니다.
아담은 그 곳을 다스리고 경작하고 그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으로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집에 거하는 자를 아들(히; 바르)이라고 합니다.
<아들(바르) 집에 거하는 사람>
아들을 의미하는 "바르"는 집을 의미하는 "베트"(B)와 사람을 의미하는 "레쉬"(r)로 조합된 단어입니다.
바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그림은 "집의 사람", "집에 거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아담은 아버지 집에 거하며 아버지를 섬기고 예배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집에 거하는 사람의 대표로 에서와 비교되는 야곱이 있습니다.
창 25: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 되어 들사람이 되었다고 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 되어 장막에 거주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우리의 상식과 편견으로 읽어서 에서는 들에서 사냥하는 남자다운 사람이 되고,
야곱은 엄마 치마폭에서 자란 유약한 아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이 부분을 히브리 원문으로 보면
"하야(되다) 에사우(에서) 이쉬(사람) 야다(알다) 차이드(사냥) 이쉬(사람) 사다(들, 땅)"입니다.
익숙한 사냥꾼이 아니라, 사냥을 아는 사람이 더 정확한 번역입니다.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야아코브(야곱) 이쉬(사람) 탐(완전한, 흠이없는) 야사브(거하다, 머무르다) 오엘(장막)입니다.
야곱에 대해서는 "탐"이라고 묘사합니다. 한글 성경에서는 이 부분이 잘못 번역되어 "조용한 사람"이라고 합니다만 구약성경에서 "탐"이란 단어는 "조용한"이 아니라, "완전한" "흠이 없는"이란 의미로써
사실은 야곱은 "완전한", "흠이 없는"(탐)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조용했기에 장막에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완전하고 흠이 없던 자였기에 장막에 거주했던 것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온전한 사람"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로마서9:13절에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라고 합니다. 야곱에게는 집 안에서 배운 말씀(계명)이 있고, 에서에게는 그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 가운데 거한다"가 헬라어로 "스케노오"인데 "장막을 치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말씀이 성육신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가운데 말씀의 장막을 치시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장막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아버지의 집에서 말씀을, 계명을 배우십시오. 그래서 야곱과 같은 "탐"한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아담에게 주어진 첫 번째 삶이 었습니다. 하나님의 처소, 장막인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예배하는 것이 우리의 첫 부르심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자녀된 우리의 본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에덴에서 우리가 이루었어야 할 첫 번째 삶이었습니다.
또한 이것이 신부의 모습입니다.
"타마티"
아가서 6장 9절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나의 완전한 자, 타마티라고 주님이 부르실 것입니다.
두번째,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지키다라는 뜻은 히브리어로 ‘샤마르’입니다.
샤마르의 뜻은 지키다, 준수하다, 보존하다, 감시하다, 주의하다
무엇을 지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두번째 에덴에서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지키는 삶이었습니다.
레26:3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샤마르)"
3-6절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샤마르할 때 오는 복이 이런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한가지 더 나누고 싶은 것은 샤마르, 지키다는 파수꾼을 의미합니다.
사 62장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파수꾼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지키는 자입니다. 아담은 샤마르, 파수꾼의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에덴 동산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도 파수꾼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33:1-6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그가 경비를 하였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 가리라 그러나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군대를 다녀온 형제들은 파수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지 잘 알 것입니다. 한 부대를, 더 나아가서 한 국가와 민족을 지키는 일인것입니다.
파수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렘 31:6 "에브라임 산 위에서 파수꾼이 외치는 날이 있을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
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여러 민족의 앞에 서서 야곱을 위하여 기뻐 외치라
너희는 전파하며 찬양하며 말하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위 예레미야에서는 히브리어 샤마르와 같은 뜻의 단어로 파수꾼, 나차르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오늘 날 이스라엘에서 이방 크리스쳔을 가르키는 단어가 노찌림인데, 바로 파수꾼이라는 나차르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바로 예수를 믿는 우리가 마지막 때의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아바드의 삶과 샤마르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에덴에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첫 명령이었고 삶이었습니다.
아담이 이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원형, 에덴에서의 삶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신랑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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